니체처럼 살다가 장자처럼 죽음을 맞은 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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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대학 2년 후배다. 같은 국문과요, ROTC(학군단)조차도 2기 후배다. 나는 보병인데 그는 해병대를 지원한 해병대 장교로 '진짜 사나이'다. 나는 실력도 주변머리도 없어 대학 재학 시절 별로 두각을 내지 못했다. 그런 탓으로 대학 재학 시절에는 그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1976년 이대부속중학교로 부임했을 때 같은 국어과 교사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그런 인연을 알게 됐다.
 
그런 탓인지 우리는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가 해가 바뀐 뒤 나는 고등학교로 옮기게 됐다. 같은 교무실을 쓰지 않게 됐지만 한 이화대학 울타리에서 지낸 탓으로 자주 만났다. 그러면서 이따금 만나 고스톱도, 포커 게임도 즐겼다.

그에게서 나도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에 그가 낸 장편 소설 <시인과 원시인>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의 문장력과 작품성에 무척 자극을 받아 나도 용기를 내 다시 붓을 들었다. 그래서 발표한 나의 데뷔작이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장편소설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 같이 이런저런 작품 얘기와 세상사 그리고 학교 안팎의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밤을 지새우면서 구담(口談)뿐 아니라, 수담(手談)도 나눴다. 그가 교단생활 20년을 채울 무렵 그의 장편소설 <미셸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출판되었고 곧 교보문고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 선풍에 어느 영화감독이 학교로 찾아와 영화화하겠다고 그에게 바람을 넣었다. 감독이 다녀간 뒤 그는 나에게 교단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좀 더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가 뜬 뒤 그만두기를 권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는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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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떠난 뒤 다른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세파에 몹시 시달렸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문학작품 대신 학습 관련 책을 펴냈다. <논설 8.15>, <초공부법>, <공부를 해야 하는 30가지 이유> 등의 책을 펴냈다. 꽤 인세 수입을 올렸으나 사람 좋고, 놀기 좋아하는 자유인인 그는 돈을 모으지는 못하고 오히려 내리막길만 걷고 있었다.
 
내가 교직을 떠난 뒤 강원도로 내려오자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그가 소설 한 편을 썼다고 나에게 출판사 소개를 부탁하기에 그 청을 들어주었다. 뜻밖에도 그 출판사와 단박에 계약이 성사됐다고 해서 나도 기뻤다. 그는 그 무렵 대히트작인 <오징어게임> 아류의 소설로 영화화를 목표로 쓴 바, 출판사 측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고 출판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소설을 찾지 않는 세태를 읽지 못했다. 그가 처음 소설을 낼 때만 해도 웬만하면 초판 2, 3천 부에 선인세까지 챙겼지만 이즈음은 초판 5백 부에 인세는커녕 작가가 제작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세태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도 코로나 후유증 등으로 흥행하기가 로또 이상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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