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느리지만 고소한 커피를 잘 만드는 가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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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일잘러'라고 부른다. 많은 청년들이 일잘러가 되고 싶어하지만, 요즘 일잘러의 첫 번째 미덕은 '속도'다. 무엇이든 빨리, 효율적으로, 잽싸게 해치워 버려야 박수를 받는다. 유튜브 영상은 갈수록 짧아지고, 긴 콘텐츠의 요약본 조회 수가 올라가며, 많은 일을 빨리 해치우도록 돕는 생산성 툴이 유행이다.

많은 이들이 완벽한 도자기가 완성될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는 장인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이런 속도의 시대에 여전히 '천천히 완벽하게'를 외치는 곳이 있다. 서울 방배동에 있는 카페 슬로비다. 아버지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조항서 매니저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서울청년센터 관악청년문화공간 신림동쓰리룸에서는 지역 가게를 소개해 지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동네 상권 안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관서동 사람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카페 슬로비'의 조항서 매니저를 만났다.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 슬로비는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자라고 들었어요. 이런 이름을 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저희 아버지와 제가 추구하는 가치이기 때문이에요. 처음 그 이름을 제안해주신 건 도자기를 만드는 아버지 지인이었는데요. 천천히 일하지만 좀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 카페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추천해주셨죠."

-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떠셨어요?

"사실 전 처음엔 그 이름에 반대했어요. 촌스럽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커피를 2년 넘게 만들다 보니 그 이름이 왜 카페랑 잘 어울리는지 알겠더라고요. 천천히 정성을 쏟아서 만들지 않으면 커피 맛이 좋지 않아져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달라지죠. 아버지 말씀이 맞았던 거죠. 그래서 슬로비라는 이름이 지금은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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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시는 건가요? 가족과 함께 사업을 하는 게 힘들진 않으세요?

"네. 아버지가 사장님이고 제가 매니저인데요.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게 물론 힘든 부분도 있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늘 아버지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요. 결국 아버지 결정대로 따라야 할 때 서운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가족과 늘 함께 있다는 건 좋아요. 일 이야기를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좋은 게 9, 안 좋은 게 1 정도랄까요?" 
     
카페 슬로비에 들어서면 도자기 가마가 눈에 띈다. 유약과 채색을 하기 전 단계의 도자기가 벽면을 꽉 채우고 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종종 열린단다.

- '천천히 훌륭하게'라는 이름이 도자기와 참 잘 어울리네요. 그래서 도자기 만드는 수업도 카페에서 진행하시는 걸까요? 어떻게 진행되나요?

"아까 말씀드렸던 아버지 지인이 운영에 조금 참여하고 계시거든요. 그분이 도자기 수업을 카페에서 하시죠. 저희 카페 한쪽에는 도자기 보관하는 공간도 있고, 도자기 가마도 있어요. 도자기를 빚는 건 아니고, 일차적으로 만들어진 하얀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서 가마에 넣어 굽는 활동을 해요.

- 카페에서도 도자기로 만든 찻잔에 커피를 주세요?

"네. 손님들이 좋아하세요."
     
바리스타의 일터이자 디자이너의 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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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서 매니저는 요즘 청년답게 'N잡러'다. 카페 매니저이기도 하지만 전공을 살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한다. 카페는 그의 바리스타로서의 일터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 이 공간은 카페이기도 하지만 매니저님의 작업 공간이기도 하다고 들었어요. 커피를 만드시는 것 외에 다른 일도 하신다고요.

"네.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일을 하고 있어요. 포스터나 책, 문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디자인이라고 보시면 되어요."

- 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배웠고 졸업 후에도 회사에서 관련된 일을 했었죠. 지금은 프리랜서로 하고 있고요. 카페가 바쁘지 않을 때 디자인 일을 외주로 계속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무실이자 카페가 됐어요."

- 디자인일을 겸업하시는 건가요?

"이런 책도 만들고요. 포스터, 눈에 보이는 모든 디자인 일을 하신다고 보면 되어요. 졸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집안 사정으로 그만뒀는데, 다른 직업을 하려다가 때마침 아버지가 같이 일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도 카페만 하고 계시는 게 아니거든요. 아버지 하시는 일에 저도 끼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사무실이자 카페가 된 거죠. 도자기하시는 분은 동업자의 위치에 계시긴 하지만 그냥 공간을 쓰고 계신 거죠."

- 카페를 하시는 분들은 다른 직업이 따로 있으신 경우가 왕왕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직업을 함께 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시너지가 나죠. 저희 아버지가 커피 관련된 판촉물 사업도 하시는데요. 제가 디자인하는 분야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아서 도움을 드릴 수도 있고요. 카페에서 새로운 메뉴를 디자인하거나 광고를 해야 할 때 제가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그럼 다른 프리랜서분들께도 사무실 겸 카페 운영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아뇨. 그분의 목적이 뭔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카페로 돈을 벌겠다거나, 사업을 하고 싶은데 자본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들어오시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일은 할 만큼 했고 이제 편하게 지내고 싶다거나 공간에 머무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확실히 커피가 맛있는 곳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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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의 카페이니만큼 그가 카페에서 추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가 만들고 싶은 카페는 어떤 공간인지, 그런 공간이 지역과 어떤 조화를 이루고 있을지 궁금했다.

- 카페는 손님들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공간이고 싶으신가요?

"손님이 보내고 싶은 시간을 가장 적합한 형태로 제공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카페마다 특성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있고 싶어 하고 다른 누군가는 과제를 하기 좋은 조용한 카페를 원하고요. 조용히 커피 맛만 즐기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죠. 손님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저희가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가지고 있는 요소 안에서 최대한 좋은 상태로 제공해드리고 싶죠.'

- 그럼 그런 다양한 카페 중에 어떤 카페를 지향하고 있으세요?

"확실히 커피가 맛있는 곳이라고 말씀드릴 순 있겠네요. 요새 젊은이들은 신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저희는 고소한 커피를 잘 만들어요. 그런 맛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커피에 만족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음향장비가 잘 되어 있어서 카페 어디에 앉아 있어도 같은 소리를 즐기실 수 있어요."

- 이 동네에 자리 잡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방배동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예전부터 이 근처에서 살고 일을 하다 보니 머무르게 되었어요. 방배동의 매력이라면 메인 거리에 웬만한 놀거리들이 몰려있다는 거요. 방배역에서 내방역까지 연결된 큰 거리에 트렌디한 프랜차이즈들이 몰려 있죠. 예술의 전당도 가까워서 문화나 트렌드에도 민감한 거리입니다. 살기에도 조용해서 좋죠."
     
- 앞으로 카페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아버지가 서울을 떠나서 지역에 베이커리 카페를 열고 싶어 하세요. 그 전까지 이 카페를 정성껏 가꾸는 게 목표입니다. 저희 카페 앞에 식물들을 좀 키우고 있는데요. 남들이 보기엔 내버려 두면 잘 자랄 것 같지만 최대한 가꾸는 것과 방치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어요. 식물들도 그러는데 카페는 어떻겠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잘 관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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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커피를 천천히 내리는 슬로비, 마당에서 식물을 가꾸는 슬로비, 도자기를 굽는 슬로비는 카페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처럼 보였다.

모두가 빨리 앞으로 달려나가는 요즘, 커피를 마시는 행위조차 허겁지겁 해결해야 할 미션처럼 느껴진다면 방배동의 카페 슬로비로 가보자. 고요한 그곳에서 한 잔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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