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균형을 이뤄내는 이 돌다리의 비결

월북 작가 이태준의 작품 중 <돌다리>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1943년 1월에 발표한 작품이니 다소 '계몽적' 요소가 담겼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논밭이 가진 시간과 역사, 그 땅에서 피땀 흘리며 살아내야만 하는 농부들의 숙명을, 결코 버릴 수 없는 튼튼히 버티고 선 돌다리에 비유해가며 가감 없이 표현해낸 작품이다.

면(面)사무소에서 지원해준 돈으로, 돌다리 옆 가까운 곳에 난간까지 곁들인 유려한 널다리가 생겨난다. 그러자 오래된 돌다리는 점차 잊히기 시작한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개울엔 서너 개 징검다리도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태에 점차 잊히는 돌다리를 신념처럼 지켜내려 하는 아버지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집스러워 더욱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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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등장하는 돌다리는 묘사된 내용으로 보아 논산 석성 수탕석교나 보령 한내돌다리처럼 넓적하고 편평하며 길쭉한 자연석을 상판으로 얹힌 '널돌다리'가 분명해 보인다. 논밭을 팔아 서울에서 병원을 확장하고자 하는 아들의 젊은 의도와 '땅이란 천지만물의 근거'라 말하며 땅을 지켜내고자 하는 아버지 늙은 신념이 충돌한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마을로 통하는 길에 돌다리를 놓았고 그 다리를 통해 아버지의 할아버지 꽃상여가, 아들 어머니의 꽃가마가, 천자문을 옆구리에 낀 소년이던 아버지 발걸음이 마을로 드나들었다.
 
튼튼한 널돌다리의 비결
 
돌로 만든 다리(石橋)는 그 형식이나 모양이 비교적 다양하다. 진천 농다리나 주남 새다리, 담양 용대리 석교처럼 돌을 '막쌓기' 하여 교각을 축조한 다리가 있는가 하면, 돌기둥으로 교각을 만들고 상판은 가공하지 않은 넓적한 돌을 걸치거나, 정교하게 다듬어 우물마루 모양으로 만든 다리도 있다. 또한 교각을 무지개(虹霓) 모양으로 만든 돌다리도 있다. 이 중 널돌다리는 '돌기둥을 세워 교각을 축조하고, 상판은 돌로 마무리한 다리'에 한정하고자 한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매사 확실해 보이는 부분도 꼼꼼하게 다시 살피고 검토하여 실수가 없게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홍예 자체가 완전한 구조물인 무지개다리(虹霓石橋)는 널돌다리보다 훨씬 더 튼튼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구조물이다.

어쩌면 무지개다리는 두드릴 필요조차 없는 다리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속담에 등장하는 '두들기고 건너야 하는 돌다리'는 바로 널돌다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유비무환이고 만사불여튼튼이다. 조상들에게 있어 어지간한 일에는 절대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제자리를 지켜내는, 튼실함의 상징이 바로 널돌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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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널돌다리는 왜 튼튼한 것일까? 비밀은 결구(結構) 방식에 있다. 한옥 결구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못이나 꺾쇠를 절대 쓰지 않는다. 기둥에 보와 도리, 창방이 결구되는 방식이다. 힘(荷重)을 받는 방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칸 간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구식(架構式) 결구'라 부른다. 한 덩어리로 잘 짜인 구조체로, 큰 지진에도 끄떡없이 잘 견뎌낸다. 바로 각 부재 간 '짜임'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목조의 이런 가구식 결구가 석조 구조물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왕 무덤은 물론, 불국사 석축과 석굴암 전실에서도 가구식 결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널돌다리에 목조·석조건축에서 사용한 가구식 결구가 유사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튼튼한 몸체를 갖게 된 것이다. 짜인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은 매우 비슷하다. 나무냐 돌이냐 사용한 재료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의 구조물로 잘 짜인 널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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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돌다리 축조는 앞서 살펴본 '널다리 축조과정'과 똑같다. 교각 놓을 자리에 적심작업을 하고, 주춧돌 모양의 지대석을 앉힌다. 지대석 위에 교각모양으로 홈을 파내,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돌기둥 각진 곳이 닿도록 결구시킨다. 열 맞춰 결구 된 교각 위에, 깎아낸 '멍엣돌'을 걸치거나 교각에 홈을 파내 흔들리지 않게 끼워 맞춘다.
 
교각과 교각은 멍엣돌 위에 '귀틀돌'을 얹어 같은 방식으로 결구시킨다. 귀틀돌 없이 자연석 상판을 얹어 완성한 널돌다리도 상당수다. 멍엣돌이나 귀틀돌끼리 접하는 부분은, 끝단에 나비모양 홈을 파 쐐기돌을 박아 고정시킨다.

귀틀돌 상부 가장자리를 따라 'ㄴ'자 모양으로 길게 홈을 파내고, 그 위에 '널돌(板石, 청판석)'을 끼워 맞춰 상판을 완성한다. 널돌 두께는 상부에서 가해지는 하중을 견뎌낼 만큼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귀틀돌 개수(n)에 따라, 상판(널돌) 열(n-1)이 결정된다.
 
돌난간은 필요에 따라 설치한다. 돌난간을 설치한 다리는 궁궐이나 한양 청계천 등에 있는 다리 외에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돌난간 설치방법도 널다리 난간과 똑같다. 귀틀돌 가장자리에 '난대석'을 끼울 구멍이 파인 '동자석'을 결구시켜 세운다. 동자석 사이에 꽃잎 모양 '화엽석'을 세우고 난대석을 끼워 둘을 고정시키면 돌난간이 만들어진다.
 
널돌다리는 결구되어 '하나로 잘 짜인 구조물'이다. 이런 구조물의 특징은 무엇보다 분열되지 않는 '일체성'에 있다. 구조물을 구성하는 부재들 서로가 잇닿아 엇물려 있다. 서로 보듬고 보완해주지 않으면 구조물은 쉬이 무너지고 만다. 구조물에 가해지는 외부의 힘을 분산시켜 나눠 떠안아야 한다. 이런 합리성과 과학성이 구조물의 생명을 길게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널돌다리가 던지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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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짜였다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고, 하나의 힘이며, 모두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혹여 하나의 교각에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웃한 다른 교각과 부재들이 그 문제를 나눠 안고 보완해주는 역할을 해낸다. 내부 균열을 각 부재들이 나눠 떠안으며 깊이 포용하고 함께 해준다. 널돌다리는 이런 연유로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힘을 쌓고 보전되어 왔다. 널돌다리가 품고 있는 이런 균형과 조화가 다리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널돌다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가, 작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꾸짖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에 과연 합리성이 존재하는가? 온전한 상식이 통용되고 있는 사회인가? 부당한 외부의 힘에 일체화되어 대비하거나 하나의 흐름과 힘으로 균형을 지켜내는 지혜를, 우리 공동체는 과연 가지고 있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 상식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생각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과도한 힘과 권세를 갖게 됨으로써, '하나로 잘 짜인 세상'에 이르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외부의 무지막지한 힘에도 말없이 무심한 세월을 견뎌냈을 널돌다리들을 찾아다니며 깊은 상념에 잠겼던 적이 여러 번이다.
 
이태준 단편소설 '돌다리'에서 의사인 아들은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밤차 타러 돌다리 건너 서울로 가버린다. 시골에 남겨진 아버지는 밤잠을 못 이룬다. 아들을 떠나보낸 자신을 '야위고 늙은 어버이 제비 한 쌍만, 가을바람 소슬한 추녀 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고 묘사한 시를 통해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전날 고쳐놓은 돌다리 한가운데에서 '쾅' 하고 굴러 보아도 발바닥만 아플 뿐, 돌다리가 끄떡할 리 없다. 돌다리처럼 단단히 '짜인' 그들 부자 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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