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때 온 한국, 차별 많았지만 이렇게 살 순 없었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모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는 청소년을 말한다. 엄마가 한국 남성과 재혼하면서 원치 않는 외국 생활을 하게 된 아이들은 언어, 문화, 학업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 분석에 따르면 외국생활 경험이 없는 국내성장 자녀(다문화가정 자녀, 만 9∼24세) 가운데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95.9%였다. 그러나 외국에서 주로 자란 중도입국 청소년은 같은 물음에 66.8%만 재학 중이라고 답했다.

상당수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공교육에 편입되지 못하고 한국 사회에서 겉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아이들은 가정에서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학업을 중단한 채 알바 혹은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8년에 한국에 온 김원원(21세, 중국)씨는 중도입국 청소년 중에는 꽤 성공적인 한국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2019년) 서울 J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올해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알바를 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김씨를 9월 16일 부천에서 만났다. 그를 통해 힘겨운 한국생활을 하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시험 보지 말라던 선생님, 이제 차별이었단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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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한국에 왔나? 초중고등학교를 다 한국에서 졸업했는데 학교생활은 어땠나?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에 왔다. 엄마가 내가 6살 때 한국 남자와 재혼했다. 7년을 이모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원래 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며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의 눈치만 봤다. 초등학교 때는 중국에서 온 아이가 나까지 2명이었다. 아이들이 종종 내 앞에 와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가길래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집에 와서 내가 들은 말을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욕이라고 하더라. 더 소심해 지고 더 우울해졌다."

- 차별이라고 느끼는 일도 있었나?
"내국인 아이들이 시험을 보는 시간에 나는 도서실에 가 있었다. 청소를 할 때도 나는 예외였다. 선생님이 '이 아이는 외국인이니까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때는 나를 배려해 주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차별이라는 사실을 안다."

- 한국어를 배울 때 힘들지 않았나. 어떻게 배웠나?
"영유아들이 보는 동화책을 엄마와 함께 읽었다. 학원이나 학습지를 통해 배울 형편은 안 돼서 자음과 모음을 매일 외우고 길거리의 간판을 읽으며 공부했다. 또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화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엄마가 상점에 들어가서 가격 물어보는 일을 시켰다. 소심한 성격이라 힘들었다. 울면서 가격을 물어봤다."

- 서울의 유명 대학교에 진학했다.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운이 좋아서 합격했다. 수시 특별전형 중의 하나인 '외국인 전형'을 통해 입학했다. 경제학과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그래도 대학 진학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나?
"외국인 전형이 있는 대학교를 사전에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그 모든 대학교에 직접 전화해서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상담했다. 대학교 마다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보를 얻는 일을 열심히 했다. J대학교는 상대적으로 학업 성적보다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토픽(한국어능력시험) 성적 등 다른 부분을 많이 봤다. 그래서 합격할 수 있었다. 자기소개서는 누구에게 도움 받을 곳이 없어서 이주민 지원기관인 경기글로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 그렇다면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 동급생들이 대부분 전교에서 10등 이내에 들던 친구들이다. 거기다 어떤 과목은 수업자체를 영어로 하기도 하고 시험을 영어로만 치는 과목도 있다. 실력이 부족하다보니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공부했다. 1학년 때는 성적이 형편없었고 올해는 조금 나아져서 일부 장학금도 기대하고 있다."

- 공부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나?
"작년에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친구들과 선배들을 보니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다른 내국인 친구들과 비교하면 내가 많이 부족하다. 입학할 때 중국에 있는 오빠가 등록금을 대줬다. 포기하고 싶어도 그냥 포기할 수가 없다. 오빠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지금 힘들지만 잘 이겨내면 너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하더라. 지금 가정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알바를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오빠 말을 듣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마음을 새롭게 했다."

- 알바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유명 아이돌 가수의 응원봉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사생팬이 공장에 몰려올 수 있기 때문에 보안 각서까지 쓰고 일한다(웃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일하는데 매일 일하는 것은 아니고 아웃소싱업체에서 연락을 하면 출근한다. 요즘은 대학 강의를 다 온라인으로 하기 때문에 퇴근 후 집에 가서 강의까지 듣고 나면 새벽 2시가 된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해결할 방법은 있어, 나도 도전할 것"

- 힘들지 않나?
"알바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알바를 하며 살았다. 명동 쥬얼리 매장에서 12시간 동안 서서 일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 잔업이나 휴일 근무를 하면 1.5배 시급을 주지만 대부분 최저시급을 준다. 알바를 하며 큰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같은 대학교에도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는데 알바하지 않고 놀 생각만 하더라. 하지만 내가 아는 내국인 친구들도 다 나처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를 하며 대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크게 슬프지는 않다."

- 엄마는 다문화가족이면서 이혼한 한부모가정을 이끌고 있다.
"하루는 엄마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더라. 엄마의 삶에 대해 듣고 안쓰러웠다. 엄마는 20대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고 하고 싶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도 나지 않고 그냥 마음이 아팠다."

- 한국에는 힘겹게 생활하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많다.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나도 많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겪은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러한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온전히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잘 찾고 노력하면 해결할 방법이 있다. 나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겠다."

김원원씨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힘들게 생존하는 중국입국 청소년의 모범이 될 수 있다.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을 엄마와 함께 감당하며 대학에서 꿈과 희망을 찾고 더 나은 도전에 나설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김원원씨를 만나고 기자는 더 큰 의문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김원원씨는 오늘날 우리 사회 20대 대학생들이 가진 좌절과 희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비를 벌기 위해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알바에 나서며 최저시급과 싸우는 이들, 자신의 곤궁한 삶을 이겨내기 위해 경쟁에 내몰리는 이들이 대견하면서도 벅차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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