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볼수록 탄식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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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서 있는 이 자리가 가장 많이 희생된 제1학살지, 그리고 저 도로에 지금 차가 올라가고 있는 것 보이죠? 저 지점에서 시작해 200m를 달리면 그 200m 구간이 또 하나의 구간인데, 그곳이 2학살지입니다. 아까 시작한 지점에서 지금 차가 달리고 있는 예, 저기까지…"
 
도무지 의아했다. 달리는 차를 빗대 설명 할 만큼 무슨 무덤이 200m나 된다니… 설명이 이어졌다.
 
"이쪽 골짜기를 따라서 3, 4, 5 학살지가 산 쪽으로 붙어 있고, 그리고 저 골짜기에 6, 7, 8학살지까지 이 곳에서부터 약 1.5km 정도 됩니다. 1에서 8학살지까지 합쳐 골령골,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최소 4천명에서 많게는 7천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 20일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산내 골령골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현장. 호남통일교육센터는 이날 통일체험학습 프로그램의 첫 답사지로 한국전쟁 전후 남한 내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집단 희생지로 알려진 대전시 동구 산내 골령골 학살지를 찾았다.
 
식장산과 만인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학살지는 산내에서 동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충북 옥천 군서면으로 연결되는 곤룡터널 전에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곳은 한 눈에 봐도 매우 외진 곳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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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 설명은 20여년 넘게 학살지를 취재해 온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가 맡았다. 심 기자는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던 1995년 이 지역에 유해가 널려있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 현장을 찾았다. 현장을 살펴보고 깜짝 놀란 그는 그때부터 인근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2000년부터는 오마이뉴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파헤쳐 왔다.
 
처음 조사에 나설 때만 해도 주민들은 이것저것 자꾸 묻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됐다.
 
"주민들이 사람들 만나기 꺼려해서 '왜 그러느냐' 했더니, '경찰이 여기 묻고 다닌 사람 있으면 무조건 신고해라'고 했다는 거예요. 아무도 이곳에 올 생각을 하지 못하고, 뼈가 널려있어도 신고도 못하는 그런 형태더군요."

북한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내 골령골 민간인학살은 이승만 정권 때인 1950년 6월말부터 그 이듬해인 1951년 초까지 대규모의 민간인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희생자들은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제주 4‧3사건 및 여순사건 관련자 등 정치범과 대전 충남지역 인근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들이다.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인과 경찰 등을 동원해 북한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을 이곳으로 끌고 와 피의 살육극을 벌였다.
 
1차 학살은 1950년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에 걸쳐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 여순사건 관련 재소자 등 1400여명이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다. 이어 2차 학살은 1950년 7월 3일부터 5일까지 독립운동가 이관술을 비롯해 4.3 사건 관련자,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1800여명 이상, 3차 학살은 2차 학살이 자행된 다음 날인 1950년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영등포, 서대문, 수원형무소 가석방자들, 공무형무소, 청주형무소 재소자, 서산, 태안, 부여. 강경, 홍성, 서천 보도연맹원 등 약 1700명~3700명이 무참히 학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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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기자는 제1학살지 표지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곳은 2000년에 직접 써서 세웠던 비입니다. 20여년 전에는 최소 3천명 희생된 것으로 기록했는데, 지금은 희생자가 최대 7천명으로 20년 전 이걸 쓸 때로부터 다시 배 이상 희생자가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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